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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유지 동의가 조합설립의 발목을 잡을 때, 행정청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비롯한 정비사업의 조합설립 단계에서 국·공유지는 늘 까다로운 변수다. 토지등소유자 수 기준은 충족하였는데도 국·공유지 면적을 동의면적에 포함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토지면적 동의율이 달라지고, 결국 조합설립인가의 성패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재산관리청이 동의 요청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장기간 침묵하다가 조합설립인가 신청 이후 뒤늦게 미동의 입장을 밝히는 경우, 조합 집행부로서는 그 침묵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떠한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수원지방법원 최근 판결은 이러한 실무상 난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이 사건은 모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이 시장에게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였으나, 사업시행구역 내 국·공유지 3개 필지 합계 903.7㎡에 관하여 명시적인 동의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되면서 시작되었다. 국·공유지를 동의면적에서 제외하면 토지면적 3분의 2 이상 요건과 공동주택 외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이를 동의면적에 포함하면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쟁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명시적인 서면 동의가 없더라도 조합설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먼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역시 조합설립 동의를 받아야 하는 토지등소유자에 해당하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일반 토지등소유자와 달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동의 방법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일반 소유자는 지장을 날인한 서면동의서와 신분증명서 사본을 제출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그러한 방식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비사업에 관한 각종 공적 권한과 역할을 부여받고 있고, 공공복리 실현을 위하여 정비사업을 지원하고 사업 추진에 협조할 의무도 부담한다. 이러한 특수한 공적 지위를 고려하면 국·공유지 소유자의 동의 의사는 반드시 별도의 서면으로 명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판결의 출발점이다.
법원은 기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를 원용하여, 정비계획의 수립이나 정비구역 지정에서부터 조합설립인가에 이르기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자체나 해당 조합에 의한 사업 추진에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면 조합설립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에서 조합은 2023년 1월과 11월에 해당 시와 국토교통부에 국·공유지에 관한 조합설립 동의 여부를 조회하였다. 해당 시는 다른 한 필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미동의 의사를 표시하였으면서도 문제가 된 두 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국토부 역시 국유지에 대하여 미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법원은 이와 같은 사정을 들어 해당 국·공유지에 관하여 조합설립 동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고, 이를 제외하여 동의율 미달을 이유로 한 반려처분을 취소하였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행정청이 장기간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다가 인가신청 이후에야 내부적으로 미동의를 검토하고, 이의절차 단계에서 비로소 미동의 입장을 밝힌 점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는 것이다. 법원은 정비사업을 지원하고 사업 추진에 협조할 의무가 있는 행정청이 조합의 반복된 동의 요청에 침묵하다가 인가신청 후에 돌연 미동의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2024년 12월 17일 개정된 도시정비법 시행령이 국·공유지 재산관리청이 동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동의 여부를 표시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보는 규정을 신설한 점도 언급하였다. 비록 이 사건 처분 이후 개정된 규정이지만, 신속한 정비사업 추진과 행정청의 책임 있는 의사표시를 요구하는 입법 방향을 확인하는 근거로 활용된 것이다.
조합 집행부가 이 판결을 단순히 ‘국·공유지는 답변이 없으면 무조건 동의로 본다’는 취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판결의 결론은 개별 사업의 전체 추진 경과, 관리계획이나 정비계획의 수립 여부, 국·공유지의 위치와 용도, 관계 행정청과의 협의 내용, 반대 의사표시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하여 내려졌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해당 시는 별도의 한 필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미동의 의사를 표시하였고, 법원은 그 필지와 아무런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나머지 필지를 구분하였다. 따라서 명시적 미동의가 존재하는 토지까지 침묵에 의한 동의로 처리할 수는 없다. 또한 관리계획이나 정비구역 지정 과정에서 사업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제출되었거나, 국·공유지를 공공시설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구체적인 계획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실무적으로 조합 집행부는 국·공유지를 단순히 동의율 계산표의 한 항목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첫째, 사업 초기 단계부터 국·공유지의 필지별 소유자, 관리청, 지목, 현황, 편입면적과 지분관계를 정확히 정리하여야 한다. 둘째, 재산관리청에 보내는 동의 요청서는 필지와 편입면적을 명확히 특정하고, 조합설립 동의 여부를 일정한 기한 내 회신하여 달라는 취지를 분명히 기재하여 내용증명, 전자문서 또는 접수증이 남는 방식으로 제출하여야 한다. 셋째, 한 차례의 요청으로 끝내지 말고 후속 공문과 면담기록을 남겨 행정청이 충분한 기간 동안 의사표시의 기회를 가졌다는 점을 자료화해야 한다. 넷째, 관리계획 수립, 주민제안, 관련 부서 협의, 건축·도로·도시계획 검토 등 사업 추진 전 과정에서 국·공유지 관리청이 어떠한 의견을 제시하였는지를 일관된 연혁표로 정리해야 한다.
인가신청 단계에서는 동의서 유무만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국·공유지 동의가 인정되어야 하는 법적 근거와 사실관계를 의견서 형태로 함께 제출할 필요가 있다. 재산관리청이 30일 이내 회신하지 않은 경우에는 현행 시행령상 동의 간주 규정을 명확히 원용하고, 그 이전부터 진행된 사업이라면 대법원 판례와 이번 판결이 제시한 묵시적 동의의 판단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행정청이 조합설립인가 부서와 국·공유지 관리부서가 다르다는 이유로 책임을 분산시키는 경우에도, 같은 지방자치단체 내부의 부서 간 협의 지연이 조합에 불리하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조합의 요청 시점, 회신 여부, 내부 검토 개시 시점, 미동의 결정 시점이 확인된다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하여 관련 문서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비사업은 동의율이라는 숫자로 출발하지만, 그 숫자를 구성하는 각 필지의 법적 성격과 행정청의 태도를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국·공유지 관리청의 침묵은 언제나 동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미동의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반대 의사가 없었고, 행정청이 충분한 기회에도 답변하지 않았으며, 관리계획 수립과 인가 절차를 통하여 사업을 지원·협조할 지위에 있었다는 사정이 축적될 때 그 침묵은 동의로 평가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행정청의 장기간 침묵으로 사업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출처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https://www.arunews.com)
